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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로 뭘 한다는 건데? 『유리알 유희 1』

by leeebook 2023. 1. 25.

 

『유리알 유희 1』, 헤르만 헤세 지음, 이영임 옮김, 민음사

『황야의 이리』에 이어서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 또 도전했다.

헤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유리알 유희』를 완성시켰고,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요제프 크네히트라는 '유리알 유희'의 명인에 대한 전기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유리알 유희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가 조금 아리송하다.

음악과 철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원리를 하나로 꿰어 나타내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고도의 지적, 정신적 세계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유리알 유희에 대해서 정확히는 모르더라도, 스토리 자체도 재미있다.

아무튼 책에 따르면 아주 순조롭고 자연스럽게 이 유리알 유희의 명인이 된 크네히트가,

세속의 세계와 유리알 유희자의 세계 사이의 간극을 느끼고 고뇌하는 중이다.

2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유희의 기호와 문법은 고도로 발달한 일종의 신비로운 언어를 구사한다. 거기에는 여러 학문과 예술, 특히 수학과 음악(내지는 음악학)이 관련되어 있으며, 거의 모든 학문의 내용과 성과를 표현하고 서로 연관 지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유리알 유희는 우리 문화의 내용과 가치 전체를 가지고 하는 유희이다.
오락란에는 독자층의 흥미를 유발하여 과다하게 주입된 그들의 지식 소재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어떤 유희도 들어 있었는데, 여기에 관해서는 치겐할스가 ‘크로스워드 퍼즐’ 이라는 기묘한 제목으로 주석을 길게 달아 보고한 것이 있다. 당시에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되게 일하고 힘든 생활을 했는데도 몇천 몇만이나 되는 사람이 여가 시간이면 글자로 된 사각형과 열십자 위로 몸을 구부리고 앉아 일정한 유희 규칙에 따라 빈칸을 메우고 있었다. 이 일에서 단지 우습거나 제정신이 아닌 면만을 보는 것은 삼가기로 하자. 또 여기에 조소를 퍼붓는 일도 그만두자. 어린애들이나 할 만한 퍼즐을 풀고, 한편으론 잡문을 읽었던 그 사람들은 결코 순진한 어린아이나 장난을 좋아하는 호사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정치, 경제, 도덕의 혼란과 동요의 한복판에서 불안해하고 있었고, 몸서리나는 전쟁과 내전을 몇 번이나 치르고 있었다. 그들의 보잘것없는 교양 유희는 즐겁기만 하고 의미 없는 어린애 장난이 아니라, 풀 길 없는 문제들과 두렵기 그지없는 몰락의 예감으로부터 두 눈을 감고 가능한 한 천진난만한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심각한 욕구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기 앞에 전개되고 있는 음악의 배후에서 정신을, 법칙과 자유를, 봉사와 지배를 훌륭히 조화시키는 힘을 예감하며 그는 이 정신과 명인에게 그의 온 마음을 바치고 있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이, 그리고 온 세상이 이 몇 분 동안에 음악의 정신에 이끌려 질서가 잡히고 해명되는 것을 보았다.
크네히트라는 학생은 노명인의 마음에 들었다. 그것도 아주 대단히. 여행을 계속하면서도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학생을 떠올려 보곤 했다. 그에 대한 메모나 점수를 수첩에 적어 넣는 게 아니라 그 청신하고 겸손한 소년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가 여행에서 돌아가자 그 이름을 손수 명부에 적어 넣었다. 그것은 최고 당국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직접 시험을 치른 후 입학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한 학생들을 기록하는 명부였다.
이제 때가 되어 그의 축복은 확인되고 공적으로 인정받은 것이었다. 그가 겪은 고뇌는 의미 있었고, 참을 수 없이 낡고 작아진 옷은 벗어 버려도 좋았다. 그를 위해 새로운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마 저 먼 세상에 그리도 이끌렸던 애들이 우리보다 약하거나 열등한 자들이라고 단정할 일은 전혀 아닌지도 몰라. 그 애들이 겪은 외관상의 추락은 어쩌면 전혀 추락이나 불행의 감수가 아니라 하나의 도약이요 과감한 실행이었는지 모르고, 아마 에쉬홀츠에서 잘 버티고 있는 우리야말로 진짜 약자에 겁쟁이인지도 몰라.
배우는 자가 스스로 전공을 선택한다는 점에서는 아마 그 전공의 자유라는 게 성립되겠지. 그렇지만 그것은 외관상의 자유일 뿐이고 실은 대개의 경우 선택은 학생 자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그 가족들에 의한 것이고, 많은 아버지들이 자식에게 정말로 그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느니 차라리 자기 혀를 깨무는 편이 낫다는 입장이거든.
탈락자들에겐 무언지 감탄할 만한 점이 있는 것 같아. 배반한 천사 루시퍼가 어딘지 위대한 구석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 아이들은 잘못한 거겠지, 아니 확실히 잘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은 무언가를 했어, 무언가를 해낸 거야. 도약을 감행한 거지. 그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우린 다르지. 우린 근면하고 인내심 있고 또 이성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우린 도약하지 않았어!
우리의 사명은 대립을 옳게 인식하는 일이야. 우선은 대립으로서, 그러나 그다음에는 단일의 양극으로서.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렇게 되려 하는 인간이란 언제라도 자신의 학문과 예술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고, 유리알 유희 속에 가장 명쾌한 논리를, 문법 속에 가장 창조적인 환상을 빛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우리는 언제 어느 자리에 놓이더라도 그에 저항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삶은 전체가 하나의 역동적인 현상이다. 유리알 유희는 근본적으로 그 역동적 현상의 미학적인 측면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것도 주로 리드미컬한 진행 과정이라는 형태로 파악하는 것이다.
누구도 평생을 그저 추상만을 호흡하고 먹고 마시며 살 수는 없는 법이라네. 발트첼의 복습 교사가 흥미를 느낄 만하다고 여기는 것보다는 역사는 장점이 하나 있지. 요컨대 역사는 현실을 다룬다는 점이야. 추상이 매력적이긴 하지.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공기를 호흡하고 빵을 먹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지하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닐 거야. 확실히 두 국민과 두 언어는 같은 국민, 같은 언어의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처럼 유창하고 거침없이 마음을 주고받을 수는 없겠지. 그러나 그것이 이해와 의사소통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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