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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문가일까? 『일의 감각』

by leeebook 2021. 4. 24.

『일의 감각』, 로저 니본 지음, 진영인 옮김, 윌북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교 4학년짜리가 출판사에 입사하고 얼마 후,

회의 시간에 '보조용언을 띄어 쓴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말은 간단해 보이는데 그게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몰라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버려둬달라고"를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요.

그게 언제 일이었는지 생각해 보니, 아주 진부한 표현이지만 강산이 한 번 변했습니다.

이제 편집 일이라면 어지간히 몸에 익었다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종이책에서 벗어나 전자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미래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막연히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중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일의 감각'인데, 원제는 'Expert'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는 일에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바닥부터 시작해 한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된,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제로부터 시작해 고수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렇게 고수가 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과정,

그리고 일에 대한 접근법을 알려 줍니다.

 

이 책은 얼핏 자기개발서 냄새가 날 것도 같아서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읽은 건 아니었는데,
제 예상을 깨고 기대 이상으로 유익했습니다.

생생한 경험과 현실적인 분석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편집자로서 어느 단계에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였습니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문장들.

 

지루함에 대처하는 자세란 업무에 상관없이 매번 최선을 다하고자 집중하는 것이다. 일이 지겨운지 아닌지 결정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기에 원한다면 결정은 바꿀 수 있다. 뻔한 소리 같지만, 그렇게 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분야가 무엇이든, 전에 어떤 일을 했든, 새로 시작하면 집단의 맨 아래에 있게 된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 자신의 작업과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어우러지는지도 알 수 없다. 종종 지겨운 일을 설명대로만 해야 한다. 우리가 그 일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아무도 관심 없다. 기계 속 톱니바퀴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수련의 과정을 시작할 때, 팀의 1년 선배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간단해, 로저. 더러운 일은 아래로 흘러가는 법이고 자넨 맨 밑에 있지.”
케이크를 만들 때 온도를 두 배로 올린다고 해서 굽는 시간이 반으로 줄지는 않는다. 행위를 배운다는 것은 시험에 대비해서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일주일 후에 잊어버리는 일이 아니다. 시간을 들이며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얻은 지혜는 끊임없는 연습으로 자기만의 언어를 정립하는 것과 같다. 얼마나 힘을 들여야 하는지, 언제 물러나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 언제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이 모든 지혜는 각자의 속도로 발전하며 억지로 키울 수 없다. 한번 숙달된, 느리게 익힌 지식은 큰 이득이 된다. 어색한 걸음과 몸에 배지 않은 움직임은 곧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된다. 결국 해당 기술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성과에 집중하게 된다.
실수를 저지르면 평판이 나빠지지만, 실수는 중요하고 피할 수도 없다. 실수를 지우는 게 아니라 실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쁜 실수(피했어야 할 해로운 실수)’와 ‘명예로운 실수(노력했지만 잘 안 된 경우)’에는 차이가 있다. 명예로운 실수는 창피한 일이 아닌 전진하는 기회가 된다. 실수는 배움이자 겪어봐야 하는 일이 되며 수정해서 다른 방식으로 해볼 일이 된다. 전적으로 피할 일이 아니다. 실수할 준비를 하는 사람은 없지만 실수에서 배우는 일은 전문가 되기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실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실수와 실패는 같지 않다.
전문가가 되려면 회복탄력성도 키워야 한다. 실수를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지 않으면서 실수가 자신을 파괴하도록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새뮤얼 베케트 Samuel Backett는 이렇게 말했다. “시도했다. 실패했다. 괜찮다. 다시 해라. 다시 실패해라. 더 나은 실패를 해라.”
임기응변이란 일을 적절히 해낼 수 없는 상황에 발휘하는 기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효과적으로 임기응변을 발휘하는 기술은 고수 되기의 핵심이다.
문지방 이론에 의하면 배움은 매끄러운 과정이 아니며 단계별로 진행된다. 문지방을 넘어야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고 문지방을 넘으려면 현재 가진 지식을 주기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음악가, 과학자, 의사, 공예가가 하는 일을 그냥 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들처럼 사고해야 한다.
스승이 언제까지나 통제만 할 수는 없다. 때가 되면 일을 넘겨주어야 한다. 계속 감독해도 도움이 안 된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 기존의 방식대로만 일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자기 팀 사람이 실수하게 놔두고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배움이 이루어진다. 전수하기 과정에서 스승은 필요할 때는 자리에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
종종 전문가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가치가 없어서 해고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쓸모없는 엘리트라고 평가절하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말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지 아프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지하실에 문제가 있을 때 깨닫는다.
고수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고수 되기란 인간으로 존재하기의 핵심이다. 우리가 많은 이가 알아봐 주는 고수가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잘하고자 애쓴 일에 더 능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면 심오한 욕구가 충족된다. 우리가 우리보다 큰 무언가에 몰두하고픈 욕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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