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역사, 경제학 관련 책들을 영어 원서로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책 읽기가 마치 숙제처럼 되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 딸이 읽고 싶다고 한 책이 있어서 사 주는 김에 제가 소장할 용도의 책을 같이 사기로 했습니다.
아마존에서 대충 Classic 그런 걸 검색하고 리스트를 훑어보다가,
어차피 소장용이니 무슨 책인들 어떠하랴 싶어서, 딸한테 아무거나 골라 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4살짜리 아이의 선택을 받은 책이 바로 이것,
Mikhail Bulgakov(미하일 불가코프)의 <The Master and Margarita(거장과 마르가리타)>입니다.
색감이 화려해서 정말이지 시선이 확 끌리는 표지입니다.
이 책은 옆면이 좀 독특하게 잘려 있습니다.
서점에서 저런 식으로 잘린 책들을 몇 번 보기도 했는데,
설마 실수로 저렇게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찾아보니 이런 트윗도 있네요(twitter.com/penguinrandom/status/713439532889284608).
Penguin Random House 🐧🏠📚 on Twitter
“Wondering why the edges of your pages look weird? It's not a mistake - it's a deckle edge! https://t.co/Q5Vh9Gxa9D”
twitter.com
Deckle Edge(데클 에지?)라고 하는데,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도련하지 않은 가장자리"라는 풀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종이 몇 장씩을 접어서 책을 제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은 페이지들이 붙어 있어서,
처음 읽을 때 직접 칼로 잘라서 펼쳐야 했다고 합니다.
Deckle Edge라는 게 그 옛날의 느낌을 주기 위한 방식이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흔히 하는 방식처럼 기계로 책을 써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 모르고 책을 온라인으로 구입한 사람들이 이런 책을 받고 잘못된 게 아니냐는 리뷰를 올리기도 하고,
실제로 호불호가 꽤 갈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잡아서 만져 본 느낌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책을 펼쳐서 양손으로 잡고 있을 때 손가락에 종이가 닿는 느낌이 부드럽습니다.
물론, 책을 잡고 여러 페이지를 차라라락 넘기는 그런 건 잘 안 됩니다.
울퉁불퉁하다 보니 갑자기 뭉텅이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어서입니다.
그래도 종이책을 읽는 손맛(?)이라는 걸 더 잘 드러내는 결과물이 이런 Deckle Edge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아무리 전자책을 잘 만들더라도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종이책만의 매력이니까 말입니다.
소장용 책을 샀으니 실제로 읽을 독서용 책도 사야겠지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게 얼마 만인가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풍자가 들어 있다는 책 소개가 있고,
지은이인 불가코프의 삶에 대해서도 알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회 풍자니 뭐니 그런 거 몰라도 됩니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느낌하고 비슷합니다.
갑자기 훅 빨려들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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